수필춘추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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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영 「노량진에서 피어나는 청춘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1-27 00:22
조회
306
노량진에서 피어나는 청춘들
최병영
장맛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바람이 짱짱하고 후덥지근한 열기를 시원스레 걷어낸다. 순식간에 길거리에 색색의 우산 꽃이 피어난다. 목적지 다른 우산 꽃들이 제각기 바람결 따라 맞부딪히며 행선지를 오간다. 빗줄기를 뚫고 역사에 기차가 들어선다.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산간을 달리고 광야를 질러왔을 기차가 잠시 멈추어서 고단한 숨을 고른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빗속에 방출된다.
노량진으로 청춘의 꿈들이 모여든다. 노량진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의 푸릇한 꿈들이 봉오리를 맺기 위해 기운차게 자양분을 길어 올린다. 노량진은 일 년 내내 도전하는 싱싱한 청춘의 꿈들이 생기차게 범람한다. 도전하는 영혼은 아름답다. 다양한 현실적 꿈들이 저 높은 곳의 영광을 향하여 쉼 없이 영혼의 결기를 다듬는다. 청춘의 꿈들은 한 해에도 몇 차례씩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한다. 쓰디쓴 변곡점이 누적되어 인내가 바닥난 꿈들이 시들어지고 새로 피어나는 꿈들이 팽팽하게 터를 다진다.
수많은 시골의 꿈들이 뒷골목 골방에다 터를 잡는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허름한 골방에다 천금 같은 딸을 밀어넣고 눈물바람으로 돌아선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어두컴컴한 골방에다 금지옥엽 아들을 구겨넣고 짠한 마음으로 돌아선다. 색깔 바랜 골방마다 꽉 들어찬 시골의 꽃씨들이 제 나름의 꿈을 키운다. 골방의 벽지는 행정공무원의 꽃봉오리로, 경찰관의 꽃봉오리로, 교원임용의 꽃봉오리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러나 새순이 봉오리를 맺는다고 모두 꽃잎을 피우는 건 아니다. 노량진에는 사시사철 진눈개비와 함께 거센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노량진의 태양은 구름 속에 은신하고 가늘게 빛줄기를 투사한다. 그러기에 노량진에서 흘린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노량진에서는 학원들이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고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학원 밖 열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노량진에서는 두툼한 책장 넘기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아 청춘들은 뜬눈으로 밤을 밝힌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에 살을 에며 심야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노량진의 밤은 무거운 침묵의 추를 달고 어둠속 깊이 침잠한다. 깊은 밤에도 청춘의 영혼들은 이슬같이 청명한 눈길로 깨어있다.
-이 방이 명당이여. 여기서 군수 아들이 고시됐잖여. 잘사는 집 아들이었는디, 공부만 허믄 됐지 방이 좋으면 뭐하느냐드니 떡-허니 붙었잖여.
집주인 할멈은 갓 시골에서 올라온 청춘에게 허름한 골방을 내주며 불확실한 희망을 판매한다. 노량진에서 살다보니 어느 결엔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효율적인 판매수법이다. 청춘은 어차피 고달픈 세상이다. 길거리에 지성은 넘쳐나는데 좀처럼 그 지성이 팔려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성을 사야 할 세상은 갈수록 이해타산에 골몰하며 자린고비처럼 호주머니에 꽁꽁 자물쇠를 채운다. 말마따나 청춘인데 공부만 집중할 수 있다면 골방인들 어떠하랴. 노량진의 청춘들은 언젠가 목청껏 부를 환희의 찬가를 위하여 현실의 불편쯤은 애틋한 추억거리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젊어서 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고 하지 않던가.
노량진의 청춘들은 무던히도 시간이 촉박하다. 그들은 생의 끝단에 선 것처럼 촌음을 아껴 쓴다. 밥 지을 시간조차 절약하여 책갈피에 눈길을 박아넣는다. 언젠가 개선장군처럼 날라리 불며 노량진을 떠나기 위해 숱한 날을 게눈처럼 컵밥이나 라면으로 한 끼니를 땜질한다. 청춘의 식생활은 대단히 부실하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긴다. 노량진의 청춘들은 노량진을 떠나기 위해 노량진에 산다.
노량진 길거리에서는 이따금씩 음악이 애절하게 오선지를 뱉어낸다. 꿈을 좇는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다른 청춘들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바쁜 청춘의 발걸음들이 잠시잠깐 멈춰 서서 경직되거나 부실해진 영혼의 결을 손질한다. 음악을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진 일상의 신발끈을 다시 옭아매기도 한다. 노랫말을 이끄는 통기타의 음률은 다분히 자선적이고 가난하다. 몇몇 청춘들이 멜로디 끝에 엎어진 모자에 몇 푼 지폐로 보답한다. 노량진의 풍속도는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슬프다.
지난날, 한때 내 청춘도 치열했었다. 파란 꿈이 싱싱했고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본적 인간욕구까지 제어하며 열심히 인내의 성을 쌓았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노량진의 청춘처럼 격렬하고 치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희망의 발광체 한 조각을 움켜쥐기 위해 저처럼 극렬히 몸부림치거나 전력투구하여 집착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저들 청춘보다 조금은 낭만적이었고 여유로웠던 것 같다. 그러기에 책갈피를 들추면 자주 술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여인들이 있었다.
노량진에 들어서면 눈물이 어린다. 어둑한 골목 깊숙한 골방에 박혀 치열했던 딸아이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투하던 딸아이의 뜨거운 체온이 낯선 골방에 서렸기 때문이다. 딸아이를 허름한 골방에 쑤셔넣고 돌아서야 했던 아릿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노량진 청춘들이 희망의 광장으로 나가야 할 진입문은 가히 낙타가 뚫어야 하는 바늘구멍이라 한다.
노량진에는 늘 기쁨보다 슬픔이 진하다. 노량진에는 늘 찬가보다 비가悲歌가 많다. 노량진에는 늘 환희보다 아픔이 절절하다. 오늘도 노량진에선 잿빛 하늘이 길거리에 우중충한 비를 뿌려댄다.
필자 약력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서울 선유중학교 교장 역임, 우도농악무형문화재 전수자, 풍물교육연구소장
▪한국신문학대상, 강서문학대상, 월간『문학세계』문학대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시․수필집『바람처럼 풀꽃처럼』외 시집과 수필집 다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최병영
장맛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바람이 짱짱하고 후덥지근한 열기를 시원스레 걷어낸다. 순식간에 길거리에 색색의 우산 꽃이 피어난다. 목적지 다른 우산 꽃들이 제각기 바람결 따라 맞부딪히며 행선지를 오간다. 빗줄기를 뚫고 역사에 기차가 들어선다.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산간을 달리고 광야를 질러왔을 기차가 잠시 멈추어서 고단한 숨을 고른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빗속에 방출된다.
노량진으로 청춘의 꿈들이 모여든다. 노량진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의 푸릇한 꿈들이 봉오리를 맺기 위해 기운차게 자양분을 길어 올린다. 노량진은 일 년 내내 도전하는 싱싱한 청춘의 꿈들이 생기차게 범람한다. 도전하는 영혼은 아름답다. 다양한 현실적 꿈들이 저 높은 곳의 영광을 향하여 쉼 없이 영혼의 결기를 다듬는다. 청춘의 꿈들은 한 해에도 몇 차례씩 희비의 쌍곡선을 경험한다. 쓰디쓴 변곡점이 누적되어 인내가 바닥난 꿈들이 시들어지고 새로 피어나는 꿈들이 팽팽하게 터를 다진다.
수많은 시골의 꿈들이 뒷골목 골방에다 터를 잡는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허름한 골방에다 천금 같은 딸을 밀어넣고 눈물바람으로 돌아선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어두컴컴한 골방에다 금지옥엽 아들을 구겨넣고 짠한 마음으로 돌아선다. 색깔 바랜 골방마다 꽉 들어찬 시골의 꽃씨들이 제 나름의 꿈을 키운다. 골방의 벽지는 행정공무원의 꽃봉오리로, 경찰관의 꽃봉오리로, 교원임용의 꽃봉오리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러나 새순이 봉오리를 맺는다고 모두 꽃잎을 피우는 건 아니다. 노량진에는 사시사철 진눈개비와 함께 거센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노량진의 태양은 구름 속에 은신하고 가늘게 빛줄기를 투사한다. 그러기에 노량진에서 흘린 눈물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노량진에서는 학원들이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고 문을 닫은 이후에도 학원 밖 열기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노량진에서는 두툼한 책장 넘기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아 청춘들은 뜬눈으로 밤을 밝힌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에 살을 에며 심야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노량진의 밤은 무거운 침묵의 추를 달고 어둠속 깊이 침잠한다. 깊은 밤에도 청춘의 영혼들은 이슬같이 청명한 눈길로 깨어있다.
-이 방이 명당이여. 여기서 군수 아들이 고시됐잖여. 잘사는 집 아들이었는디, 공부만 허믄 됐지 방이 좋으면 뭐하느냐드니 떡-허니 붙었잖여.
집주인 할멈은 갓 시골에서 올라온 청춘에게 허름한 골방을 내주며 불확실한 희망을 판매한다. 노량진에서 살다보니 어느 결엔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효율적인 판매수법이다. 청춘은 어차피 고달픈 세상이다. 길거리에 지성은 넘쳐나는데 좀처럼 그 지성이 팔려나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성을 사야 할 세상은 갈수록 이해타산에 골몰하며 자린고비처럼 호주머니에 꽁꽁 자물쇠를 채운다. 말마따나 청춘인데 공부만 집중할 수 있다면 골방인들 어떠하랴. 노량진의 청춘들은 언젠가 목청껏 부를 환희의 찬가를 위하여 현실의 불편쯤은 애틋한 추억거리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젊어서 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고 하지 않던가.
노량진의 청춘들은 무던히도 시간이 촉박하다. 그들은 생의 끝단에 선 것처럼 촌음을 아껴 쓴다. 밥 지을 시간조차 절약하여 책갈피에 눈길을 박아넣는다. 언젠가 개선장군처럼 날라리 불며 노량진을 떠나기 위해 숱한 날을 게눈처럼 컵밥이나 라면으로 한 끼니를 땜질한다. 청춘의 식생활은 대단히 부실하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긴다. 노량진의 청춘들은 노량진을 떠나기 위해 노량진에 산다.
노량진 길거리에서는 이따금씩 음악이 애절하게 오선지를 뱉어낸다. 꿈을 좇는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다른 청춘들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바쁜 청춘의 발걸음들이 잠시잠깐 멈춰 서서 경직되거나 부실해진 영혼의 결을 손질한다. 음악을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진 일상의 신발끈을 다시 옭아매기도 한다. 노랫말을 이끄는 통기타의 음률은 다분히 자선적이고 가난하다. 몇몇 청춘들이 멜로디 끝에 엎어진 모자에 몇 푼 지폐로 보답한다. 노량진의 풍속도는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슬프다.
지난날, 한때 내 청춘도 치열했었다. 파란 꿈이 싱싱했고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본적 인간욕구까지 제어하며 열심히 인내의 성을 쌓았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노량진의 청춘처럼 격렬하고 치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희망의 발광체 한 조각을 움켜쥐기 위해 저처럼 극렬히 몸부림치거나 전력투구하여 집착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저들 청춘보다 조금은 낭만적이었고 여유로웠던 것 같다. 그러기에 책갈피를 들추면 자주 술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여인들이 있었다.
노량진에 들어서면 눈물이 어린다. 어둑한 골목 깊숙한 골방에 박혀 치열했던 딸아이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투하던 딸아이의 뜨거운 체온이 낯선 골방에 서렸기 때문이다. 딸아이를 허름한 골방에 쑤셔넣고 돌아서야 했던 아릿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노량진 청춘들이 희망의 광장으로 나가야 할 진입문은 가히 낙타가 뚫어야 하는 바늘구멍이라 한다.
노량진에는 늘 기쁨보다 슬픔이 진하다. 노량진에는 늘 찬가보다 비가悲歌가 많다. 노량진에는 늘 환희보다 아픔이 절절하다. 오늘도 노량진에선 잿빛 하늘이 길거리에 우중충한 비를 뿌려댄다.
필자 약력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서울 선유중학교 교장 역임, 우도농악무형문화재 전수자, 풍물교육연구소장
▪한국신문학대상, 강서문학대상, 월간『문학세계』문학대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시․수필집『바람처럼 풀꽃처럼』외 시집과 수필집 다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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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영 「노량진에서 피어나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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